#1.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 지에 대한 물음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질문하는 사람은 자신의 질문이 엉뚱한 지 아닌지 주변사람들을 의식하면서 확인하곤 한다.
'질문'에는 옳고 그름이 있고 그것은 정해져 있는 것에 맞느냐 안맞느냐에 대한 것이다.
엉뚱한 질문을 하는 것이 창의적, 창조적 힘을 가졌기에 질문을 하는 것에 의미를 가지는 것이 좋다.
간 박사로 유명한 김정룡 박사는 1977년 B형 간염백신을 세계 최초로 발견 했지만
우리나라가 그 백신을 상용화하는 데는 1981년이고 세계에서 3번째로 하였다.
당시 보건사회부는 이를 검토할 인증기준이 없었고
미국과 프랑스에서 이를 상용화 한 것을 토대로 기준삼아서 우리나라에서 상용화 한 것이다.
보건사회부는 '세계최초'에 왜 그렇게 조심스러웠을까?
우리는 한번도 기준의 생산자, 기준의 창조자가 되지 못하고 외부 기준을 자기기준으로 삼아 사는 것에 습관이 되었다.
엉뚱한 질문을 시작으로 그에 대한 계속된 노력으로 기준이 생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보편적으로 지켜야 하는 가치있는 이념을 외부에 두는 것은 자신이 기준 생산자로 등장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2. "자신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기준의 수행자가 아닌, 생산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기준은 외부에서 보편성과 객관성으로 무장해서 굉장한 힘으로 우리를 지배한다.
보편적 기준으로 자신을 비추면 부족하고 결함있고 죄스러운 인간 밖에 없다.
보편적 이념을 밟고 서서 자기 주인으로 사는 데 월등한 성취를 이룬 철학자는 서양의 니체, 동양의 장자를 들 수 있다.
윤편曰 "수레바퀴 깎는 기술은 내 손에서 벌어지는 일, 오로지 손의 능력으로 아들에게도 전할 수 없습니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사건'이며 '이론'은 사건을 정리하는 것이다.
지혜가 발휘되는 곳은 사건의 세계이며 성인의 말씀은 그 순간까지만 진리이므로 이론은 '술찌꺼기'에 불과하다.
'술찌꺼기'는 술기운이 있어 진짜 술로 착각할 수 있지만 진짜일 수는 없듯이 시간이 지난 이론은 진리의 힘이 없다.
몇 년 간 다이어트 하는 여성은 이론을 많이 알고 있지만, 다이어트를 고민하는 것이 다이어트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
어떤 기업이 2~3년 간 혁신을 하겠다고 하지만, 혁신에 대해 토론하고 이론에 참여하는 것을 혁신한 것으로 착각하는 것
성인의 글을 읽으며 성인이 된 것 같은, 성인의 기준을 따르는 것이 자신을 성인과 동일시 착각하는 것일 수 있다.
이는 사건을 담당할 주체로서 이론은 있고 힘이 없는 것이다.
보편적 이념수행하는 데는 '우리'는 적극적이나 일상관리하는 '나'에게는 소홀하다.
#3. "나만의 욕망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사건으로 발동시킬 수 있어야 자기 주인으로 살 수 있습니다."
주체로서의 힘(주체력)과 나만의 고유한 활동성을 가지고 있어야 자기 주인으로 사는 것을 결정할 수 있다.
정의롭고 도덕적인 학생운동가들이 사회로 나오더라도, 사회에 정의와 도덕성이 향상되지 않는다.
혁명하는 개별자들이 혁명가가 혁명되지 않은 채 이념만 수행하면서 사회만 바꾸려 했기 때문이다.
도가철학자 양주曰 "내 정강이 털 한개가 천하를 이롭게 한 들 뽑지 않겠다."
도가철학자 노자曰 "나를 천하만큼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천하를 줄 수 있다."
개인의 자발성에서 나온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사회는 약하다.
이념의 틀에 갇히지 않고 이 이념을 토대로 자기 내적으로 부터 나온 활동이 그 사회를 발전시킨다.
개개인의 자발성과 독립성, 주체성, 주체력은 개인적인 범위 안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변혁과 발전, 품격에 직접적인 기원이 될 수 있다.
스스로 즐기는 행위 '자쾌'라는 말과 자유는 같은 말이다.
전체애에 대항하는 나의 활동이, 나의 자발적 생명력이고 내적 활동성을 근원으로 해서 내 삶을 끌고 가는 힘이
자기가 자신의 주인임을 확인시켜주는 '자유'라는 개념이다.
#4. "내적 자발성의 실천자가 되어 경계에 서겠다."
모든 개념과 이념은 한편에 서있고 대립적 포용이 불가능하기에 사람을 가두게 된다.
상식 상의 이성은 비율을 따져 계산하고 집단을 관리하고자 하며 이에 개개인은 정지하고 경직돼버린다.
모든 삶 속의 활동들은 운동의 형식이며 이는 경계가 중첩돼서 일어나는 일련의 과정이며 하나로 고정되지 않는다.
보편적 이념을 넘어서 자발적 생명력을 소유하려는 사람은 운동의 경계에 서서 이념으로 부터 가두어 지지 않는다.
욕망의 활동성에 자기를 맡길 때,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모든 경계를 품게되고 유연해서 강해진다.
생명은 활동을 하고 그 운동으로 경계에 선다. 이를 내적으로 수용하고 자신과 일체해야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은 정해진 것을 수용하는 것이나 제한된 학습을 하는 것, 정해진 것을 실천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은 내가 한번은 정해보기 위해서이고 내가 나를 표현하는 것이다.
'윤리적이고 주체적으로 산다'의 실체, 보편적 이념이 내면화된 것을 자기기준으로 착각하면 안된다.
그래서 자기를 표현하는 동력으로 못 만드는 배움은 한쪽으로 서는 것이고 경계를 모두 품은 게 아니다.
자기 활동은 읽기와 쓰기 사이, 배우기와 표현하기 사이, 듣이와 말하기 사이에 있어야 한다.
한 쪽에 수동적으로 갇힌 게 아니라 경계에서 자기로 살아있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사랑이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서 살게 하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자기 밖에 이미 생산된 기준에 견주어 본다.
우리를 지배하는 보편적이념은 이미 지나간 것이며 내적 자발성에서 생산되는 기준에 맞추고 자기를 사랑해야 한다.
욕망의 담당자로 경계에 서 있는 주체로 자신을 두어 소홀히 관리되지 않는 자기에게 가장 존엄한 존재가 된다.
윤리규정을 지키는 자신은 뇌물의 유혹에 넘어가지만 자기 존엄을 지키는 주체는 뇌물을 받지 않는다.
존엄한 존재는 존엄한 활동을 하며 윤리적 힘을 가진 존재로 재탄생하게 된다.
스스로가 얼마나 아름다운, 가치있는, 자유로운, 강한 존재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 확인처가 모든 창조적 동력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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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강의 'Who am I' 최진석 교수님의 '자신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47분) 편을 요약해 보았습니다.
[강연소개] 창의력, 삶의 기품, 인격적 성숙 등은 모든 지적활동이 도달하고자 하는 궁극적 지점인 동시에, 자신이 확보해야만 하는 '길'이다. 자신의 주인으로 사는 것은 이러한 목표지점을 자신이 직접 본 후에, 그곳에 일직선으로 도달할 수 있는 힘을 스스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그 힘은 다름 아닌 인문학에서 나온다. 과연, 최진석 교수가 알려주는 자신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인가?
[강연자 소개] 최진석 교수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 북경대학교 철학박사, 하버드 대학교 옌칭연구소 방문학자
인간이 그리는 무늬,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역서)장자철학 外 다수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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