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적인 경험의 사람으로서 아름다운 삶이라는 무거운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다가

세 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진행해 보고자 합니다.

 1. 삶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이야기'

 2. 아름다운 삶을 비추는 영혼, '친구'

 3. 정의로운 제도들에서 타인과 함께하는 '좋은 삶'

 

#1. 삶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이야기'

 

영화[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한 남자가 30년 전 젊은 자신을 만나는 타임리프 소재 영화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타자] 소설에는 70세 노인인 보르헤스가

과거의 자신인 19살 청년 보르헤스를 만나 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같은 사람이었지만 서로 너무 달랐기 때문에 대화를 통해 나중에야 노인은 자기자신임을 깨닫는다.

"반세기의 시간이 그저 쓸데없이 지나가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에 대해 이런저런 책과 다양한 취미들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는 우리가 서로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린 너무 비슷하면서도 너무 달랐다."

만약 몇 십년 전 과거의 나를 만난다면, 미래의 나를 만난다면 우린 얼마나 다르고 또 같을까?

 

시간은 삶의 신비를 담고 있으며, 인간 실존의 조건이자 존재론적 결함이다.

시간은 세상 만물을 변화하게 하고 탄생하게 하고 죽게하면서 성장하고 노화되게 한다.

무한하고 영원한 시간을 사는 신의 시간은 안정되고 불변하나 인간은 한정되있다.

이것을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인간의 한계(유한자)로 나타내며 탄식한다.

예측이 불가능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들, 우리 삶을 뒤흔드는 잔인한 변화 속에서 아름다운 삶을 꿈꿀 수 있을까?

 

[인생은 아름다워] 영화 장면 중 '우리가 이겼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수용소를 배경으로한 풍부한 코믹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유대인의 비참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리지 않으며 홀로코스트를 코미디 소재로 쓰였다며 비판 받았지만

여러 저명한 영화상을 받으며,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었던 이유는 아름다운 삶에 대한 답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잔혹한 현실을 보여주지만 굉장히 역설적인 제목처럼, 아름다운 인생을 위한 인간의 노력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 아들 조슈아가 엄마를 만나면서 '우리가 이겼다' 라고 말한다.

굉장한 범죄로 억압하였지만 그들의 시대는 끝났으며, 우리는 희생당한 역사보다 승리자의 역사로 기억되게 하는 것.

혹독한 환경에서 견딜 수 있고 희망없는 미래와 공포를 이기게 하는 힘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해준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미 지나간 과거, 벌어진 사건, 희생당한 사람들의 경험을 다시써서 보게한 것도 '이야기'이다.

 

[알키노오스 왕궁에 있는 오디세우스] 프란체스코 하예즈 작품

미국 여성철학자 한나 아렌트 "이야기는 일련의 견디기 어려운 사건 자체의 의미를 드러내 준다."

어떤 사건이 진행 중엔 그 사건의 의미를 알기 어렵고 실패나 성공도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남지 않는다.

"모든 슬픔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 이야기를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그 고통을 견딜 수 있다."

오디세우스의 모험담을 담은 [오디세이야] 중 방랑자가 된 오디세우스와 알키노오스 왕이 만나는 이야기에서.

(모험을 통해 개인이 성숙해지는 이야기를 담았기 때문에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왕이 벌인 잔치에서 데모도코스가 오디세우스와 관련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오디세우스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그 긴 여정과 어떤 시련 중에도 눈물을 보이지 않던 오디세우스는 비로소 자신이 겪은 일들의 의미를 깨달은 것이다.

 

'인간의 위대한 행적은 하나의 이야기로서 영원히 존재하게 된다.'

이야기는 다양한 경험을 구성해 하나의 의미를 만드는 작업이며 사건에 관련한 개인과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립해 준다.

한나 아렌트의 '이야기는 우리를 살아나게 한다'라는 말처럼,

인간은 반드시 죽으며 계속되는 우주의 역사 속에서 잊혀지지만 '이야기'가 우리를 불멸 시킬 수 있다.

인간의 위대한 행적은 하나의 이야기로서 영원히 존재하게 된다.

그래서 이야기는 아름다운 삶을 숙고하게 하는 기능을 할 수 있다.

 

#2. 아름다운 삶을 비추는 영혼, '친구'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작품

'목소리, 성격은 하나인데 아침엔 다리가 4개, 점심엔 2개, 저녁엔 3개인 이 세상의 동물은 무엇인가?'

스핑크스의 질문에 '인간'이라고 답을 하는 오이디푸스는 자신감에 찬 표정을 하고 있다.

오이디푸스는 이 문제를 푼 이후에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하여 4며의 자식을 낳게 되는 비극이 시작된다.

'인간'이라는 보편적, 일반적인 개념의 답을 알고 있었던 오이디푸스는 개별적, 구체적인 것은 알지 못했다.

당신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과 당신은 누구인가-는 전혀 다른 질문이며 보편성은 우리에게 해결책을 주지 못한다.

보편적이면서 개별적인 존재인 인간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통해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 있다.

 

오디세우스에게 '당신은 누구인가?' 라고 묻는 알키노오스가 그를 궁금해 하고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나의 삶의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에게 기꺼이 나의 이야기를 내놓게 된다.

나의 '정체성'을 들어주는 이는 아름다운 삶을 비추는 영혼이자 구체적인 타인이며 우정(친구)으로 볼 수 있다.

 

키케로의 [우정에 관하여] 중  '우정은 미래를 향해 밝은 빛을 투사해 영혼이 불구가 되거나 넘어지지 않게 해준다.'

'우정은 선의와 호감의 완전한 감정이며, 가장 아름다운 덕성이며 가장 우선시 해야할 덕목이다.'

'진정한 친구를 보는 사람은 자신의 영상을 보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중 '행복을 위해서는 우정(philia)이 반드시 필요하다.'

(행복에 대한 이야기와 그것이 인간 최선의 목적이라고 함.)

'우정에는 상호 간 이익을 주고받는 관계라는 개념이 포함돼 있으며 타자 간 이익은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사람은 우정을 지속하기 위해 서로에게 유익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서로 덕을 고양하는 관계 만이 진정한 우정이며 완전한 우애는 서로 유사한 미덕을 가진 사람 사이에서 가능하다.'

좋은 친구를 갖기 위한 선행조건은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며 나의 자질로 부터 훌륭한 우정이 시작된다.

자기자신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고 훌륭한 우정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3. 정의로운 제도들에서 타인과 함께하는 '좋은 삶'

현대 프랑스 철학자 폴 리쾨르 [타자로서 자기자신]

이야기가 그 사람의 정체성을 말해주며 그 이야기의 정체성은 끊임없는 해석을 통해 변형되어야 한다고 한다.

" 좋은 삶은 각자에게 완성의 이상들과 꿈들로 이루어진 성운이고,

이것에 준해서 하나의 삶은 다소간 완성되거나 미완성된 것으로 간주된다. "

 

다양하고 변화가 가능한 좋은 삶에 대한 기준이지만 우리 모두는 좋은 삶에 대한 지표를 가지고 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떻게 아름다운 삶의 주인공이 될 것인가",

"누구의 친구가 될 것이며 어떻게 이야기를 들어줄 것인가"등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율리시스와 세이렌]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작품  (율리시스=오디세우스)

오디세우스의 모험담 중 세이렌의 바다를 건넌 유일한 사람이라며 오디세우스가 사람들에게 자찬하는 부분이 있다.

세이렌의 유혹을 이기기 위해 돛에 몸을 묶고 선원들의 귀는 밀랍으로 막는 전략을 펼쳤다는 것이다.

하지만 독일 작가 프란츠 카프카는 [세이렌의 침묵]의 글에서 이 이야기의 반문을 제기한다.

세이렌의 노래는 무엇이든 뚫을 수 있었지만 거만한 오디세우스에게 더 큰 무기인 '침묵'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이야기는 타인에게 다르게 들릴 수도 있고 자신의 경험을 다르게 이야기 할 수도 있다.

서로의 연약함과 상처받음에 귀기울여야만이 우리는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고

진심과 배려가 갖춰질 때에 아름다운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고통과 상처 없는 삶은 가능하지 않으며 이러한 것들을 받아들이고 내 의미 안에서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눈물, 통증, 연약함 등에도 불구하고

포용하고 나아갈 수 있을 때 아름다운 삶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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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아고라' 김애령 교수님의 '아름다운 삶을 비추는 영혼, 친구'](54분)편을 요약해 보았습니다.

이화여자대학교 인문과학원 HK교수님이신 김애령 교수님께서 강연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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