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인간은 복잡한 만큼 여러 측면에서 대답 해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질문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지금 껏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나의 삶에서 나의 정체성이 드러난다.

과거에는 얼굴에 쓰여있는 사람의 과거와 미래를 보기 위해 관상을 보았고

지원자가 누구 인지 알기 위해 기업 인사팀은 삶의 흐름이 쓰여있는 이력서를 본다.

뼈, 몸무게, 생김새, 머리카락 등의 생물학적 데이터로는 사람을 안다고 하지 않는다.

충무공 이순신에 대해서 안다고 말하면서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 지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충무공 이순신 장군님 자료

 

#1. "우리 삶을 어떻게 꾸며야 할까요?"

자신의 삶을 추하게 생각하면 인간은 살 수가 없기에 자기최면으로 라도 멋지게 설명한다.

자기 삶을 멋지고 근사하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아름답게 살고 싶다고 한다.

여기서의 아름다움이란 참됨(진), 착함(선), 멋짐(미), 만족 등 넓은 의미의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움'을 검색해 보았다.

칸트 '미학'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미'를 예술이 추구하는 가치로 인식하게 하였다.

하지만 '아름다움(미)'은 어디에나 있으며 히랍사람들은 '토 칼론'(to kalon)으로 이름 붙였다.

예술, 윤리, 학문 등 인간 삶을 전체에 아름다움은 인간 삶 전체에서 추구되는 심미적 가치이다.

(불쌍한 이웃을 도와주고 이를 아름답다고 하는 것도 '윤리적' 아름다움이다.)

 

'토 칼론'을 다룬 플라톤의 [大 히피아스]의 대화편 중 소크라테스와 히피아스의 이야기가 있다.

멋과 부로 우아한 삶을 영위하는 히피아스(아테네인)에게 '아름다움' 자체에 대해 답을 듣고자

소크라테스는 부단히 노력했지만 히피아스는 '아름다움'의 정의에 관심이 없었다.

히피아스 曰 '아름다움은 나와 같이 아름다운 말을 구사해 영향력을 행사하며 아름다운 삶을 사는 것이다'.

 

 

#2. 아름다움과 사랑은 무엇인가-

아름다움을 제대로 향유하기 위해서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이야기 할 줄 알아야 한다.

짐승들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이에 대해 이야기 하지 못하지만,

인간 만이 자기의 일을 생각하고 음미하고 나눌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문학은 살아가는 이들이 서로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철학자들의 모임]_'심포지움' 술과 음식으로 분위기가 풀어진 자리에서의 지적 토론

플라톤의 [향연]은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다룬 작품이다.

젊은 파이드로스 '멋있게 살기 위해서는 애인이 있어야 하며, 연애하는 사회가 훌륭한 사회가 된다.'로 말을 꺼낸다.

 ㅇ파이드로스 : 사랑과 아름다운 행위 '없던 용기와 지식도 생기는 것이 사랑의 위력이다'

 ㅇ파우사니아스 : 범속한 사랑과 고상한 사랑 '고상한 사랑만이 사람을 훌륭하게 만든다'

 ㅇ에릭시마코스 : 사랑과 우주의 조화 '우주가 조화를 이루며 순환하는 것은 사랑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본래 사람의 모습은 구형이라고 믿어왔던 시대였다.

완벽한 아름다움을 구형으로 생각했고, 구형인간이었을 때에 힘과 지식이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훌륭한 형태의 인간은 자만하다 신의 형벌로 인해 지금의 '반쪽짜리'로 찢어졌고

그 후부터는 자신의 잘린 반쪽을 평생 그리워 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플라톤[향연] 중 아리스토파네스가 말하는 에로스의 기원(3종의 성별)

아리스토파네스는 현재 인간의 기괴한 형상은 아름다움이 아닌 희극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인간이 불완전 하기에 완전한 구형형태로 복귀하려는 갈망이 사랑이라고 했다.

'사랑에 아름다움은 상관없다. 불구가 온전하기 위한 애처로운 갈망만이 있다.'

비극시인인 아가톤은 사랑은 타자가 필요없으며 예술작품처럼 사랑이 만든 것은 아름답다고 보았다.

'모든 좋은 것의 총합, 젊고 유연하고 섬세한, 지혜까지 다 갖춘 것이 사랑이다'

아리스토파네스의 불완전한 사랑과 아가톤의 즉자적인 사랑을 말한 것이다.

 

 

#3. 소크라테스의 '사랑'

소크라테스는 앞서 말한 사랑의 정의를 종합하면서 '아름다운 것을 갈망'하는 것이라고 한다.

못가지고 있기에 갈망하는 것이고 사랑 자체는 아름답거나 훌륭하지 않다.

마르기 위해 물을 갈망하는 것 처럼, 향유하기 위해 아름다움을 갈망하며

아름다움을 소유하여 내가 아름다워 지고 이는 좋은 것이니 자신이 행복해 진다.

 

인간은 세포는 끊임 없이 죽어 새것으로 교체되며 매 순간 죽는 존재다.

평생을 시간과 싸우다 죽는 세포의 에너지 역할을 하는 것이 아름다움을 취하려는 갈망이다.

죽을 운명의 생명체는 짝을 찾아 자기 연장을 하며 이는 좀 더 아름다운 후손을 남기려는 인간의 욕망인 것이다.

몸의 재생산은 종족 번식이지만 정신의 재생산으로 명예를 남기고자 한다.

 

 ㅇ'scala amoris'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사랑의 단계.

  1) 육체의 개별적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단계

  2) 육체의 아름다움 일반을 갈망하는 단계

  3) 정신적인 것의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단계

  4) 지혜를 갈망하는 단계

  5) 통합적 지혜를 갈망하는 단계

  6) 아름다움 자체를 갈망하는 단계

 

인간 지혜의 진화는 우주의 모든 것을 지식으로 축적했고 광범위한 우주를 지식으로 담아내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우주의 비밀을 다 밝힌다 하더라도 인간이 이것을 왜 이해하는 지도 밝혀져야 최후의 비밀도 밝힌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이 인간을 아는 것이 지혜의 최종, 크라운관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플라톤의 향연2(1873, 유화)] 독일 화가 안젤름 포이어바흐 작품

 

#4. "나를 알기 위한 방법은 사랑하는 이의 눈 속에 비춰진 나를 보는 것이에요."

자기 혼자 자신을 돌아보는 것으로는 나를 알 수가 없다.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드러나며 깊은 관계인 애인을 통해서 나를 확인할 수 있다.

플라톤이 '대화'편으로 철학을 이야기한 이유도 관계를 통해 지혜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테네의 전략가이며 미남 정치가 알키비아데스의 이야기로 [향연]은 마무리로 접어든다.

그는 소크라테스가 비록 못생긴 외모지만 그의 내면의 아름다움을 찬양하였고

이를 갖고 싶어했으나 소크라테스가 구애를 거절하면서 자신의 못남을 한탄한다.

 

소크라테스가 여제사장 디오티마의 입을 빌려 말했듯,

진정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움 자체를 보는 것'이며 인간 한계를 넘어 그것에 도달하는 노력이라고 한다.

삶에 관해 이야기 하면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고, 이 아름다움에 닿지 못하는 것까지 이야기 하는 것이

[향연]의 이야기이고 인문학 전체의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On bullshit (헛소리에 대하여, 1986)]의 저자 미국 철학자 해리 프랑크푸르트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을 포기하는 순간 망가지는 인생이 됩니다.

현대의 철학자 해리 프랑크푸르트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다루며 이렇게 이야기 했다.

그 문제를 던지면서 그 질문자는 이미 답을 알고 있으며

그에게는 귀한 것, 아름다운 것, 지켜야 할 것 등 그 기준이 있는 것이다.

'어떻게 사는 가' 하는 것은 그 기준을 명확히 해가는 일이다.

 

---

[인문학강의'Who am I' 이태수교수님의 '아름다운 것은 어렵다.'](49분)편을 요약해 보았습니다.

한국 철학회 회장님 이시자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님이신 이태수 교수님께서 강연해 주셨습니다.

 

기존 내용과 그 배경에 관련한 이야기도 함께 해주셔서 이해가 잘되고 재밌었습니다. (딸꾹)

#0. 생물학을 통한 인문학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과학에서 인문학이 생각하는 주제들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 지 이야기 하려 한다.

 

<파우스트>의 '천상의 서곡'편에서 메피스토펠레스가 등장하는데, 이가 말하길

'만약 인간들이 이성(천상의 빛)만 없었어도 더 재미있게 살았을 것이다',

'인간은 짐승들 보다 훨씬 더 짐승답게 사는 데 이성(천상의 빛)을 사용한다'.

이 때에 '사랑에 빠진 남자'를 통해 메피스토펠레스는 하나님에게 제안을 하게 된다.

이 사랑에 빠진 남자(파우스트)는 소녀를 갖기 위해 메피스토와 영혼을 파는 계약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과연 파우스트의 영혼은 육체와 나뉠 수 있는 것일까?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

 

#1. 어떻게 물질이 생명체가 될 수 있는가?

'생물'이라는 말은 '살아있다'와 '물체'의 복합어로 물체 중에 살아있는 것을 일컫는다.

하지만 우린 한번도 생명을 정의내린 적이 없이 서로 다른 개념으로 생명을 말한다.

(실제로 세계 저명한 사전들에서도 '생명'의 정의를 순환논리로만 설명하고 있다)

우리 인간은 생명의 '최고봉'에 자리함에 있다는 것으로 부터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 '다먹자고 하는 일인데..' 우리 삶에 있는 먹을 것에 대한 표현들

어린아이가 목적달성의 수단으로서 '나 밥안먹어' 는 언어표현을 사용하는 것에는

상당히 깊은 의미가 있으며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열역학 제 2법칙과 자발성을 들 수있다.

 

열역학 제 2법칙

'고립계에서 총 엔트로피의 변화는 항상 증가하거나 일정하며 절대 감소하지 않는다. '

 ㅇ 모든 질서는 무질서로 향해간다.

 ㅇ 자연상태에서 A->B가 다시 B->A로 되지 않는다.

 ㅇ 엔트로피의 증가 ㅡ 실제 사용 가능 에너지 감소 ㅡ 무질서도 증가 ㅡ 재활용 불가

(방송 중 내용 생략으로 인터넷에서 참고)

 

쥐를 통해 실험해 본 결과 암컷의 경우 배우자를 정하는 데 더욱 신중하고 까다롭다.

 ㅇ 1. 먹이를 잘 물어올 수 있는가(경쟁력)

 ㅇ 2. 나와 냄새가 얼마나 다른가, 어떤 냄새가 나는가(차별성)

사람에게도 이와 같은 실험을 해보니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

 ㅇ 스위스 베른대학 베트킨드 교수 시험

   - 20대 남성의 땀이 묻은 셔츠를 20대 여성에게 제공해서 본인 취향을 고르게 한 후

   - 이 남녀의 차이를 보았더니 유전자 조합의 성향이 서로 반대적 이었다고 함.

 

스킨십의 세계(of 연애의 과학) 中 "썸에서 연애로 발전할 때 중요한 건 키스다!"

우리 몸의 약 60조개 세포는 항상 '같은 편'임을 서로에게 증명하고 다를 경우 면역세포가 공격을 한다.

이렇게 처리된 외부세포의 조각을 T세포(킬러셀)가 다시한번 확인하고 죽인다.

이때의 MHC유전자는 그 외부세포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역할을 하여 '확인'을 한다.

 

아기가 태어날 때에 엄마 아빠의 유전자가 뒤섞여 탄생하게 되는데

이때에 MHC 유전자(주조직 적합성 복합체) 조합이 좀 더 다양한 구성으로 되어있다면

색다른 병원균, 외부세포의 위협으로 부터 안전할 수가 있다.

즉, 질병을 이겨낼 수 있는 생물학적 요건을 다르게 갖고 있는 짝(차별성)이 생존에 유리하며,

여성은 본인과 MHC조합이 똑같이 않은 사람을 본능적이고 직관적으로 후각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러한 '다름'을 매개로 사랑이 싹 트고 무수한 경우의 수로 새 생명은 탄생한다.

10의 400승 분의 1로 탄생하는 '나'는 불가사의, 황하사의 하나뿐 인 존재이다.

지구탄생과 멸망까지 난 단 한번만 존재한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변화무쌍한 자연의 조건(질병 등)에도 모두 다 다름으로 누군가 생존한다.

다양성은 자유와 민주를 만들었으며 인간이 바로 민주주의의 화신이다.

 

#2. "이렇게 이기적인 인간은 이성으로 이기심을 잘 다스리고 있는가?"

그러나 문제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 하나하나가 이기적이다.

이기주의자들 사이에서 협동이 가능한 지 여부를 알아보는 저명한 게임이론 '죄수의 딜레마'

두 명의 공범을 각각의 방에서 심문을 할 때에 경찰은 이들에게 아래 그림과 같이 조건을 건다.

경제적인 결과로는 둘 다 자백을 하는 것이나 생물학적인 안목으로 보면 다르다.

 

조선일보 - 조선비즈 中 죄수의 딜레마 삽화

동물들의 상호경쟁구도에서는 각자 [최소악의 전략]을 선택하는 본능으로 둘 모두 배반하지만,

인간사회에는 다양한 군상들이 여러 번 '죄수의 딜레마'와 유사한 상황에 놓인다.

한번 도와주었을 때에 은혜를 갚으면 다시 도움을 주는 선택적 협력자,

한번 도움을 받고 은혜를 안갚았는데 보복으로 돌아온다면 다음에는 도와주는 선택적 배반자,

무조건적 협력자, 관용주의자, 도덕주의자 등 다양한 군상들이 반복된 경험을 하는 것이다.

 

(대규모 집단의 성공적 호혜주의 : '서로 특별한 혜택을 주고 받는 ~')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항상 협력하고 배반하는 상황을 마주치고

배반을 통해 잠깐의 이득을 취하는 무조건적, 선택적 배반자는 결국 사회적 추방을 당하게 된다.

추방의 조건을 결정짓는 요인은 '평판'이다.(사회 구성원들의 ~)

 

처음 보는 사람을 30분 동안 한 방에 있게 한 후 상대방에 대한 느낌을 묻는 실험을 수 십년 동안 했는데,

놀랍게도 모든 실험에서 95%의 실험자가 상대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결과가 있었다.

'평판'은 우리 몸에 잠재된 능력이고 누군가와 얼굴을 맞대고 살 때 '평판'이 얼마나 중요한 능력임을 알 수 있었다.

 

인간은 긴 수명에 따른 장기기억이 가능하고 다른 개체에 대한 고도의 인식능력을 지녔기에 가능하다.

(우리는 유년시절 괴로웠던 기억에 대상들을 또렷하게 기억할 수 있다)

인간의 본능은 600만 년 동안 사회적 동물로 진화해 왔다.

 

다모클레스의 칼 "한 올의 말총에 걸린 칼"

 ㅇ로마 정치가이자 문학가 '키케로'의 이야기 중 '다모클레스의 칼'편

   - '시라큐스'라는 지역의 군주 주변에는 아첨꾼들이 넘쳤다.

   - 다모클레스 또한 그 중 하나였고 왕의 자리를 높게 칭하자 왕이 그 자리에 앉아 보게 하였다.

   - 그리고 그의 머리 위에 말꼬리털 하나로 칼을 연결해서 걸어놓는 장면이 위의 삽화.

   - 왕의 권좌는 '언제 떨어져 내릴 지 모르는 칼 밑에 있는 것 처럼 항상 위기와 불안 속에 유지되고 있다'

 

지금 받은 은혜는 언젠가 돌려줘야할 은혜이며, 누군가에 의한 보답이 기대된다.

'다모클레스의 칼'의 일화처럼 행복이 항상 위기와 불안이 함께 있으며

인간은 항상 '평판의 잣대'가 되며, 언젠가 우리는 평가 당하게 될 것이다.

 

#3. 마무리

1. 육체와 정신은 '하나의 몸'이다.

 ㅇ 살아있는 물질인 우리는 질서를 통해서 의미를 가지는 생명이다.

 ㅇ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가 영혼을 따로 떼낼 수 없음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2. 태초부터 종말까지 당신은 단 '하나'이다.

 ㅇ '나'는 단 한번만 존재하며 '유아독존'이다.

 

3. 이타는 '궁극적 이기'를 완성한다.

 ㅇ인간은 모두 '이기주의자'이다. 정말 자기를 위하여 이웃을 도울 때 진정한 이기가 완성된다.

 ㅇ 남을 돕는 것이 결국 나를 위한 것이다. 나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600만 년동안의 생존전략이었다.

 

-> 우리는 모두 이미 기적의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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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강의'Who am I' 정용석 교수님의 '나는 이미 기적이다!'](33분)편을 요약해 보았습니다.

경희대학교 생물학과 정용석 교수님께서 강연해 주셨습니다.

 

이번 영상은 너무 짤려 있어서 이번 편은 문단나누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1.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 지에 대한 물음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질문하는 사람은 자신의 질문이 엉뚱한 지 아닌지 주변사람들을 의식하면서 확인하곤 한다.

'질문'에는 옳고 그름이 있고 그것은 정해져 있는 것에 맞느냐 안맞느냐에 대한 것이다.

엉뚱한 질문을 하는 것이 창의적, 창조적 힘을 가졌기에 질문을 하는 것에 의미를 가지는 것이 좋다.

 

故 김정룡 박사님

간 박사로 유명한 김정룡 박사는 1977년 B형 간염백신을 세계 최초로 발견 했지만

우리나라가 그 백신을 상용화하는 데는 1981년이고 세계에서 3번째로 하였다.

당시 보건사회부는 이를 검토할 인증기준이 없었고

미국과 프랑스에서 이를 상용화 한 것을 토대로 기준삼아서 우리나라에서 상용화 한 것이다.

보건사회부는 '세계최초'에 왜 그렇게 조심스러웠을까?

 

우리는 한번도 기준의 생산자, 기준의 창조자가 되지 못하고 외부 기준을 자기기준으로 삼아 사는 것에 습관이 되었다.

엉뚱한 질문을 시작으로 그에 대한 계속된 노력으로 기준이 생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보편적으로 지켜야 하는 가치있는 이념을 외부에 두는 것은 자신이 기준 생산자로 등장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2. "자신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기준의 수행자가 아닌, 생산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기준은 외부에서 보편성과 객관성으로 무장해서 굉장한 힘으로 우리를 지배한다.

보편적 기준으로 자신을 비추면 부족하고 결함있고 죄스러운 인간 밖에 없다.

보편적 이념을 밟고 서서 자기 주인으로 사는 데 월등한 성취를 이룬 철학자는 서양의 니체, 동양의 장자를 들 수 있다.

 

[장자 천도] 윤편과 수레바퀴 장면

윤편曰 "수레바퀴 깎는 기술은 내 손에서 벌어지는 일, 오로지 손의 능력으로 아들에게도 전할 수 없습니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사건'이며 '이론'은 사건을 정리하는 것이다.

지혜가 발휘되는 곳은 사건의 세계이며 성인의 말씀은 그 순간까지만 진리이므로 이론은 '술찌꺼기'에 불과하다.

'술찌꺼기'는 술기운이 있어 진짜 술로 착각할 수 있지만 진짜일 수는 없듯이 시간이 지난 이론은 진리의 힘이 없다.

 

몇 년 간 다이어트 하는 여성은 이론을 많이 알고 있지만, 다이어트를 고민하는 것이 다이어트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

어떤 기업이 2~3년 간 혁신을 하겠다고 하지만, 혁신에 대해 토론하고 이론에 참여하는 것을 혁신한 것으로 착각하는 것

성인의 글을 읽으며 성인이 된 것 같은, 성인의 기준을 따르는 것이 자신을 성인과 동일시 착각하는 것일 수 있다.

이는 사건을 담당할 주체로서 이론은 있고 힘이 없는 것이다.

보편적 이념수행하는 데는 '우리'는 적극적이나 일상관리하는 '나'에게는 소홀하다.

 

#3. "나만의 욕망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사건으로 발동시킬 수 있어야 자기 주인으로 살 수 있습니다."

주체로서의 힘(주체력)과 나만의 고유한 활동성을 가지고 있어야 자기 주인으로 사는 것을 결정할 수 있다.

정의롭고 도덕적인 학생운동가들이 사회로 나오더라도, 사회에 정의와 도덕성이 향상되지 않는다.

혁명하는 개별자들이 혁명가가 혁명되지 않은 채 이념만 수행하면서 사회만 바꾸려 했기 때문이다.

 

도가의 시초 노자 "통치철학 5가지"

도가철학자 양주曰 "내 정강이 털 한개가 천하를 이롭게 한 들 뽑지 않겠다."

도가철학자 노자曰 "나를 천하만큼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천하를 줄 수 있다."

개인의 자발성에서 나온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사회는 약하다.

이념의 틀에 갇히지 않고 이 이념을 토대로 자기 내적으로 부터 나온 활동이 그 사회를 발전시킨다.

개개인의 자발성과 독립성, 주체성, 주체력은 개인적인 범위 안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변혁과 발전, 품격에 직접적인 기원이 될 수 있다.

 

스스로 즐기는 행위 '자쾌'라는 말과 자유는 같은 말이다.

전체애에 대항하는 나의 활동이, 나의 자발적 생명력이고 내적 활동성을 근원으로 해서 내 삶을 끌고 가는 힘이

자기가 자신의 주인임을 확인시켜주는 '자유'라는 개념이다.

 

#4. "내적 자발성의 실천자가 되어 경계에 서겠다."

모든 개념과 이념은 한편에 서있고 대립적 포용이 불가능하기에 사람을 가두게 된다.

상식 상의 이성은 비율을 따져 계산하고 집단을 관리하고자 하며 이에 개개인은 정지하고 경직돼버린다.

모든 삶 속의 활동들은 운동의 형식이며 이는 경계가 중첩돼서 일어나는 일련의 과정이며 하나로 고정되지 않는다.

보편적 이념을 넘어서 자발적 생명력을 소유하려는 사람은 운동의 경계에 서서 이념으로 부터 가두어 지지 않는다.

욕망의 활동성에 자기를 맡길 때,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모든 경계를 품게되고 유연해서 강해진다.

생명은 활동을 하고 그 운동으로 경계에 선다. 이를 내적으로 수용하고 자신과 일체해야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은 정해진 것을 수용하는 것이나 제한된 학습을 하는 것, 정해진 것을 실천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은 내가 한번은 정해보기 위해서이고 내가 나를 표현하는 것이다.

'윤리적이고 주체적으로 산다'의 실체, 보편적 이념이 내면화된 것을 자기기준으로 착각하면 안된다.

그래서 자기를 표현하는 동력으로 못 만드는 배움은 한쪽으로 서는 것이고 경계를 모두 품은 게 아니다.

자기 활동은 읽기와 쓰기 사이, 배우기와 표현하기 사이, 듣이와 말하기 사이에 있어야 한다.

한 쪽에 수동적으로 갇힌 게 아니라 경계에서 자기로 살아있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사랑이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서 살게 하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자기 밖에 이미 생산된 기준에 견주어 본다.

우리를 지배하는 보편적이념은 이미 지나간 것이며 내적 자발성에서 생산되는 기준에 맞추고 자기를 사랑해야 한다.

욕망의 담당자로 경계에 서 있는 주체로 자신을 두어 소홀히 관리되지 않는 자기에게 가장 존엄한 존재가 된다.

윤리규정을 지키는 자신은 뇌물의 유혹에 넘어가지만 자기 존엄을 지키는 주체는 뇌물을 받지 않는다.

존엄한 존재는 존엄한 활동을 하며 윤리적 힘을 가진 존재로 재탄생하게 된다.

스스로가 얼마나 아름다운, 가치있는, 자유로운, 강한 존재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 확인처가 모든 창조적 동력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2019년 세계최초 5G 상용화 국가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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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강의 'Who am I' 최진석 교수님의 '자신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47분) 편을 요약해 보았습니다.

 

[강연소개] 창의력, 삶의 기품, 인격적 성숙 등은 모든 지적활동이 도달하고자 하는 궁극적 지점인 동시에, 자신이 확보해야만 하는 ''이다. 자신의 주인으로 사는 것은 이러한 목표지점을 자신이 직접 본 후에, 그곳에 일직선으로 도달할 수 있는 힘을 스스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그 힘은 다름 아닌 인문학에서 나온다. 과연, 최진석 교수가 알려주는 자신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인가?

 

[강연자 소개] 최진석 교수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 북경대학교 철학박사, 하버드 대학교 옌칭연구소 방문학자

인간이 그리는 무늬,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역서)장자철학 다수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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